2021년 암호화폐 상승장과 함께 불었던 대체 불가 토큰(NFT) 열풍은 이제 상당 부분 사그라들었다. 비트코인 가격이 다시 오르고, 새로운 상승장이 가까이 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 NFT 시장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러나 NFT는 아직 ‘한 방’을 가지고 있다. 현재까지는 디지털 토큰에 고유성을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방편이기 때문이다. 웹3 시대와 메타버스가 탄력을 받는다면 NFT도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 화제가 된 ERC-404 포맷 역시 NFT의 부활을 이끌어낼 수 있는 촉매제로 꼽힌다.
아직 NFT 시장은 초기다. 이 글에서는 NFT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되는지, 기본적인 원리와 개념에 대해 알아본다.
NFT 이해의 핵심
디지털의 속성과 고유성
요즘은 디지털 시대다. 컴퓨터를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디지털의 가장 핵심적인 속성이 ‘복사가 손쉽다’는 점이다. 컴퓨터 키보드에서 텍스트를 선택해 ‘Ctrl C + Ctrl V’ 키를 누르면 모든 텍스트가 그대로 복사-붙여넣기 된다. 텍스트만 가능한게 아니다.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 모든 디지털 포맷이 마찬가지다.
여기서 나타나는 디지털의 주요 속성 중 하나가 ‘흔하다’는 것이다. 복제가 쉽기 때문에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는 모든 것이 흔해진다. 흔해지는 만큼 고유성을 잃고 그 가치를 보전받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NFT가 주목받는 이유
뉴스에서 특정 화가가 그린 그림 NFT가 수백만달러의 돈을 받고 팔렸다는 소식을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그림 역시 손쉽게 ‘복사+붙여넣기’가 가능한 디지털 이미지다. 그런데 왜 그렇게 높은 가격에 팔렸던 것일까.
아래에 삽입된 NFT 작가 비플의 에브리데이(Beeple’s EVERYDAYS): 5,000일 간의 기록(THE FIRST 5000 DAYS) NFT 가격은 6900만달러다. 왜 이런 그림을 6900만달러를 주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NFT는 이 그림 이미지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비플이라는 작가가 그린 에브리데이 – 5000일의 기록이라는 이름의 그림의 원본’이라는 전자 기록이 바로 NFT다. 그러니까 부동산으로 치면, 아파트 현물 자체가 아니라 특정 아파트 주소지 등기가 NFT다. 즉, NFT를 거래한다는 것은 그림 이미지에 원본에 대한 권리를 거래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 원본에 대한 권리라는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NFT가 없던 시절의 예술품 거래들도 본질을 살펴보면 모두 원본에 대한 추적 가능성(original traceability)을 구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는 많은 가품들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진품 모나리자는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가치가 높지만, 막상 그 그림들을 한 군데에 펼쳐놓고 봤을 때 사람들은 쉽게 가려내기 어려울 것이다.
진품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손을 떠나 첫 번째 고객에게 인도됐고, 그로부터 여러 차례 주인을 바꾸며 세계를 떠돌았다. 바로 그 기록들이 해당 작품이 진품 모나리자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즉, 예술품 구매의 핵심은 이미지 자체가 아니라 원본의 추적 가능성인 셈이다.
NFT가 원본의 추적가능성을 증명하는 방식
가장 널리 사용되는 NFT는 보통 이더리움 ERC-721 포맷으로 만들어진다. 이를 이용하면 내가 만들고 싶은 미디어(그림, 텍스트, 오디오, 비디오)를 NFT 형식으로 만들어 블록체인에 저장할 수 있다. 언제,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 후에 누구의 손을 거치는지가 모두 블록체인에 함께 저장된다. 이것이 NFT가 원본의 추적 가능성을 증명하는 방식이자, 오늘날 NFT가 주목받게 된 핵심 이유다.
NFT의 작동과 저장
앞서 NFT가 그림이나 텍스트 자체가 아니라 해당 미디어에 대한 일종의 등기 권리증이라는 설명을 했다. 블록체인에는 이 등기 권리증이 기록된다. 그렇다면 내가 NFT를 만들면서 첨부한 원본 미디어 파일들은 어디에 저장되는 것일까.
물론 미디어 자체를 블록체인에 저장할 수도 있지만 블록체인 공간은 용량에 따라 수수료가 책정되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수료를 부담해야 할 수 있다. 그래서 보통은 IPFS(Inter Planetary File System)같은 P2P 기반 분산형 저장 매체에 보관한다. 그리고 NFT 정보에 보관된 IPFS의 주소를 첨부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 IPFS는 블록체인이 아니다. 다만 해킹이나 데이터 유실을 막기 위해 P2P 방식으로 데이터, 파일을 보관하는 시스템일 뿐이다.
모나리자의 작품 NFT를 샀는데 그 그림 파일을 저장해놓은 IPFS가 해킹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모나리자 작품 진본을 NFT로 구매했다는 기록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정작 소유자가 해당 원본 그림을 구경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수도 있다.
NFT 거래의 특징
지난 2021년부터 시장에는 NFT 전문 마켓플레이스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가장 유명한 것은 블러(Blur), 오픈씨(Opensea), 라리블(Rarible), 크립토슬램(CryptoSlam), 아토믹에셋(AtomicAssets), 수퍼레어(SuperRare) 등이다. 이런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경매 방식으로 다양한 NFT 거래를 할 수 있다.
이들 거래소의 공통점은 예술품 거래와 비슷한 방식으로 NFT를 거래한다는 것이다. NFT 보유자가 자신의 NFT를 거래소에 올리면 사고 싶은 사람들이 가격 입찰을 하는 식이다. 가장 높은 가격을 적어내거나, 보유자가 설정해 놓은 즉시 거래가를 적어내는 사람이 해당 NFT를 가져간다.
NFT를 일반 토큰처럼 거래할 수 없을까? : ERC-404
주변을 둘러보자. 예술품은 독특한 가치를 가지는 물건이기 때문에 아무나 팔기도, 아무나 사기도 어렵다. 그래서 파는 사람도 적고, 사는 사람도 적다. 암호화폐 식으로 말하자면 ‘시장 유동성이 부족한 재화다’.
예술품과 비슷한 속성을 가진 NFT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방식을 일반 암호화폐인 FT, 그러니까 ‘대체 가능 토큰’ 거래처럼 바꿔서 거래를 활발하게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바로 ERC-404 표준이다.
현실에서도 이와 비슷한 거래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아파트 매매다. 보통 아파트는 직접 가서 집을 둘러보고 사는 게 보통인데, 건물 구조와 자재들의 규격화가 잘 되어 있는 고급 아파트의 경우에는 특정 주소나 브랜드만 보고도 구매 결정을 내리는 게 가능하다. 중국 부동산 부자들이 한국 아파트를 구매할 때 자주 쓰는 방식이기도 하다.
아직 NFT 시장에 고급 아파트 같은 동일한 효용성(Utility)을 담보해주는 브랜드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웹3가 보편화하고 메타버스 시장이 확산하면 자연스럽게 디지털 세계에서도 그런 효용성 제공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NFT의 본질을 알게 되면 앞으로 나타날 새로운 ‘변종’에도 유연하게 투자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NFT의 본질과 원리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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