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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23년 6월 암호화폐를 맡기면 이자를 주는 ‘암호화폐 예금’ 서비스를 제공하던 하루인베스트와 델리오가 하루 간격으로 ‘출금 정지’ 조치를 각각 단행했다. 하루인베스트는 직전까지 신규 인력 채용과 마케팅, 사무실 추가 임대 등을 진행할 정도로 아무런 징후를 보이지 않은 갑작스런 조치였고, 델리오는 문제가 없다고 한 지 하루만에 내린 결정이어서 암호화폐 업계에 대한 불안감과 부정적 인식을 한층 강화시킨 사건이 됐다.
문제는 델리오가 고객 자금 중 일부를 하루인베스트에 맡겼고, 하루인베스트는 B&S홀딩스에 자금을 위탁했던 구조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B&S에 문제가 생기자, 하루인베스트가 출금을 중단했고, 델리오도 충격을 받게된 것이다. 씨파이(CeFi, 중앙화된 기관이 제공하는 암호화폐 관련 금융 서비스)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루인베스트와 델리오에 자산을 맡겼던 피해자들은 두 회사 경영진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두 회사와 B&S홀딩스 주요 임원들의 출국을 금지시켰다.
2. 전개(하루인베스트)
하루인베스트(하루)는 6월 13일 “서비스 파트너사 한 곳에서 문제를 발견해 6월 13일 오전 9시 40분(한국시각)부터 입출금 요청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파트너사가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아 비판을 받았으나, 다음날인 14일 “위탁운영사인 B&S홀딩스가 허위 경영보고서를 제공해 회사(하루)와 이용자를 속였다고 판단하고 6월 13일부터 순차적으로 법정 대응을 하기로 했다”는 입장을 냈다. B&S홀딩스를 지목한 것이다.
B&S홀딩스는 재무제표 상 2021년, 2022년 모두 매출 0원에 완전자본잠식 상태의 매우 부실한 기업이라는 것이 언론 취재로 드러났다. 등기부등본 상 주소지에는 다른 회사가 입주해있었다. 페이퍼컴퍼니와도 같은 형태여서, 왜 하루가 이런 회사에 자산 운용을 맡겼는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하루 측은 B&S홀딩스에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하루 측은 서비스 중단 공지 직후 회사 모든 직원들이 사무실을 떠났다. 전형적인 ‘먹튀’, ‘러그 풀’ 의혹이 제기되자 당일 오후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서비스 중단 열흘 동안 모습도 드러내지 않다가, 돌연 직원 100여명 전원에게 고용계약 해지를 통보하는 등 석연치 않은 행보를 이어갔다.
하루에 돈을 맡겼다가 자산을 되찾을 수 없는 상태에 놓인 투자자들은 집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하루는 최대 연 12%의 고이율을 제공하는 암호화폐 투자 상품을 운영했으며, 그 거래 규모는 2조 9000억원, 이용자 수는 8만명에 이르렀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스스로 밝힌 바 있다. 피해자들은 대표단을 구성해 피해자 수가 350여명, 피해 규모는 약 103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3. 전개(델리오)
델리오는 하루인베스트가 출금 중단을 한 다음날인 14일 오후 6시30분부터 입출금을 중단했다. 하루 사태 때문에 입출금 요청이 쇄도했다면서 ‘코인 런’ 현상을 표면적인 이유로 들었지만, 언론 인터뷰에서는 “하루인베스트에 투자한 것이 맞다”고 말했다. 하루 쪽에 투자한 것이 탈이 났다는 의미였다.
하루의 입출금이 중단된 전날(13일)만 해도 델리오는 “우리는 하루 사태와 관련이 없다”고 했지만, 불과 하루 만에 말을 바꾼 셈이 됐다. 델리오는 ‘어제는 몰랐다’는 식으로 설명했고, 이용자들로부터 거센 비난이 쇄도했다. 이용자들은 델리오에 맡긴 돈을 되찾을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델리오가 하루에 맡긴 자금은 얼마나 되는지, 하루 사태 이후 빠져나간 출금액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물었지만, 델리오는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입출금 중단 사태 발생 4일 만인 6월 17일 델리오의 정상호 대표는 피해자 설명회 성격인 투자자보고회의를 자청했다. 구체적 피해 규모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을 아꼈지만, B&S홀딩스가 보유한 2000억원~3600억원 규모의 FTX 채권을 매각하면 자금 회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만약 그것도 안 되면 회사 매각 또는 개인 주식 매각 등을 해서라도 손실을 메우고, 단계적으로 출금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정상호 대표는 ‘투자자 대표자 회의’ 구성을 요청했고, 6월 20일 대학교수, 변호사, 개발자 등으로 구성된 대표자 회의가 출범했다. 델리오 직원들은 입출금 정지와 함께 전원 재택근무에 들어갔다가, 6월 21일부터 사무실 출근을 재개했다.
델리오는 6월 26일 발표한 공지에서 카르다노(ADA), 솔라나(SOL), 테조스(XTZ), 폴카닷(DOT), 쿠사마(KSM), 니어(NEAR) 등 6개 코인의 스테이킹 입출금을 6월 28일 12시부터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주요 종목은 입출금 재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3.1. 델리오 부실 회계 의혹
텔레그램 채널 ‘변창호 코인사관학교’는 6월 14일 델리오가 고객 자산을 유용하고 있으며, 직원 명의로 암호화폐를 현금화하는 등 회계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글은 델리오가 입출금을 중단하기 직전에 올린 것으로, 출금 중단이 임박했다고 경고했다. 결국 그 주장이 들어맞았고 나중에 더욱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다.
같은 날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델리오에 대해 수사기관과 논의하고 횡령, 배임 의혹을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델리오의 정상호 대표는 6월 17일 투자자보고회의에서 “잘못된 소문”이며 “검찰, 경찰, 세무당국에서 소명 요구를 꾸준히 받고 있으며 개인 계좌까지 전부 들여다본 상황”이라고 말했다.
3.2. 델리오의 ‘꼼수 VASP 신고’ 의혹
델리오는 ‘금융 당국에 신고된 기업’이라는 점을 늘 강조했다. 지난 4월 창립 5주년 인사에서도 “정부로부터 VASP를 취득해 법적 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홍보했고, 이는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확보하는 근거가 됐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실제로 델리오는 금융위 금융정보분석원(FIU)에 가상자산사업자(VASP)로 신고해 국내 영업허가를 받았지만, 신고한 내용은 가상자산을 이전, 보관, 관리하는 업무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상자산 운용 및 예치·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고, 전문가는 규제 회피 또는 위법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델리오가 원래 운영하던 대부업도 의혹을 받고 있다. 델리오는 원래 암호화폐 대출기업으로, 코인을 맡기면 코인 또는 현금(원화)을 빌려주는 서비스를 운영했다. 그러나 델리오가 VASP 신고를 하려고 하자, 금융위는 코인 대출과 달리 현금 대출은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이에 델리오도 서비스를 중단하고 원화 대출 사업부문(델리오블루)을 타인에게 양도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FIU는 델리오의 VASP 신고를 수리했다.
하지만 델리오는 서류상으로만 원화 대출 사업을 분리했을 뿐, 해당 부문은 여전히 델리오와 함께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문제가 되는 대부업을 떼어내 완전히 다른 이름의 별도 법인으로 만들어 어딘가 넘긴 척했지만, 단지 금융 당국의 눈을 속이기 위한 것이었고 실제 분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4. 씨파이(CeFi) 서비스의 치명적인 약점
디파이(DeFi)는 탈중앙화 금융(Decentralized Finance) 서비스의 약자로 암호화폐에 기반해 중앙화된 기관 없이 제공되는 금융 서비스를 뜻한다. 유니스왑, 커브, 아베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쓰이는 용어가 씨파이(CeFi, Centralized Finance)이다.
사실 씨파이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비암호화폐 경제에서 보는 기존의 금융 서비스는 대부분 금융기업이 운영하는 씨파이 형태이기 때문이다. 다만, 암호화폐 상승장에서 일부 암호화폐 운용기업들은 10%가 넘는 고이율을 제시하면서 씨파이의 장점을 강조했다. 개인이 모든 투자 과정의 책임을 오롯이 맡아야 하는 디파이와 달리, 일부 수수료를 내고 믿을 수 있는 전문가들에게 자산을 맡기면 보다 안전하게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고객지원서비스 등 기존 금융 서비스 같은 익숙한 체계도 상대적 장점으로 꼽혔다.
문제는 투명성이었다. 하루인베스트나 델리오는 사업 기밀을 이유로 자산의 운용 구조를 공개하지 않았다. 하루인베스트는 2022년 11월 파산을 신청한 FTX 거래소를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고객들은 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고객들이 맡긴 자산이 유용된 것 자체가 FTX 사태와 닮은 부분이기도 하다. 또 겉으로는 경쟁관계인 델리오와 하루인베스트가 실제로는 서로 자산 운용을 맡기는 이익공동체였다는 것은 고객을 기만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기존 금융 서비스에서 은행과 운용사 등 금융기관은 고객 자산에 대해 금융 당국의 감시를 지속적으로 받지만, 암호화폐는 금융감독 대상으로 볼 것인지조차 아직 명확하다고 보기 힘들다. 대표적인 것이 고객이 맡긴 암호화폐의 종류와 수량이 운용사의 자산과 섞이지 않고 분리 보관해야 한다는 ‘동일종목, 동일수량 원칙’이다. 이 원칙은 2023년 5월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이용자 보호법)에 담겼지만 시행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보호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투자를 해야 하는 위험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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