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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이 이겼으니 알트코인 안심? 판결문 보니 ‘아닐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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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Paul Kim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리플랩스 간 소송이 13일(현지시간) 나온 뉴욕 지방법원 약식 판결로 일단락됐다.

현재까지는 ‘비겼다’는 표현이 적당해 보인다. 법원은 리플 측이 일반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판매한 XRP는 증권이 아니지만 기관투자자들에게 판매한 XRP는 미등록 증권이라고 판단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이 크립토 진영의 승리이자, 알트코인 가격 상승의 촉매제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동안 SEC가 여러 알트코인들에 증권법 위반 혐의를 씌우면서 위축됐던 알트코인 가격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판결문에 따르면 그런 기대는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SEC의 논리를 적지 않게 인용했다. 이번 판결은 아직 약식 판결에 불과하지만, 이후 상급심에서 이 논리가 그대로 확정될 경우 알트코인들은 오히려 상당한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식 SEC 증권성 판별 논리, 그대로 인정돼

SEC는 그동안 암호화폐 프로젝트에 증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때 미국 연방 증권법에서 증권성을 판별할 때 쓰는 ‘하위 테스트(Howey Test)를 적극 활용해왔다. 미국 법원에서는 ▲돈이 투자되었는가 ▲그 돈이 공동의 사업에 쓰였는가 ▲투자에 따른 이익을 기대할 수 있었는가 ▲그 이익이 타인의 노력으로 발생했는가 등의 테스트를 만족하는 대상은 증권으로 간주한다.

규제 기관 입장에서 이 방법의 장점은 구체적인 계약이나 명시적인 증권 판매가 없어도 생태계와 토큰 유통 흐름을 주도하는 재단이나 개발사 하나만 있으면 사후적 맥락에 따라 규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번 소송에서 리플은 이 부분을 방어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이들은 증권성 판별을 위한 하위테스트가 성립하려면 투자 계약에 일종의 ‘필수 요소’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SEC처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으로 코인의 증권성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서 온전히 SEC 측의 손을 들어줬다. 투자 계약의 외형적 형식이나 구체적 요건이 갖춰지지 않아도 하위 테스트만 통과하면 증권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광범위한 디지털 자산을 증권으로 분류하려 하는 SEC의 논리가 판례로 확립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향후 SEC와 소송을 벌이는 알트코인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잠금 계약 있으면 ‘투자 행위’로 판단…현행 알트코인 대부분 해당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이날 재판부가 판결 요지에서 기관투자자들이 리플 측과 맺은 잠금(lock-up) 계약을 증권성을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로 거론했다는 것이다. 잠금 계약이란 토큰 구매량에 따라 구매자에게 일정 기한 동안 재판매를 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내용의 계약을 말한다.

재판부는 “일부 기관 구매자들은 XRP를 구매하면서 거래량에 따라 재판매 제한을 두는 잠금 계약을 맺었다”며 “이러한 제한이 있었다는 것은 XRP가 화폐 혹은 기타 소비적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개념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간단히 말해, 합리적인 경제 행위자라면 법정화폐를 대체하는 용도로 XRP를 구매하면서 수백만 달러를 동결하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잠금 계약을 감수하고 코인을 구매하는 행위는 일종의 투자이고, 이때 동원된 코인은 미등록 증권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이 역시 향후 이어질 SEC 대 알트코인들과의 증권법 위반 재판에서 반복해서 활용될 수 있는 논리로 보인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새 나온 알트코인 대부분이 일반투자자 판매 시 잠금 계약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문제의 심각성이 높다.

‘증권’ 결정 내려져도 거래소 ‘상폐’는 피할 수도

그렇다면 판결과 동시에 70% 넘게 폭등한 XRP 가격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역시 재판부가 일종의 ‘교통정리’를 해준 탓이다.

재판부는 개인 대상으로 행해진 프로그램 판매와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거래된 XRP의 경우 리플랩스에 대한 투자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증권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그동안에는 특정 암호화폐가 증권으로 규정될 경우 거래소에서 해당 코인을 거래할 수 있는지 여부가 확실치 않았다. 이 불확실성 때문에 대부분의 거래소가 증권성 코인을 상장 폐지했고, 연이은 상장 폐지는 코인 가격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앞으로는 특정 코인이 특정 맥락에서 미등록 증권이라고 판명되더라도 해당 코인을 거래소에서 불특정 다수가 교환하는 행위에 대해 SEC가 증권법 위반으로 시비를 걸기는 어렵게 됐다.

미등록 증권을 판매한 재단이나 개발사가 위법 행위로 인해 거액의 벌금이나 과징금을 부과받고 망할 수는 있지만, 당장 내가 보유한 암호화폐를 거래할 수 없게 되거나 짧은 기간에 치명적인 가격 폭락이 발생할 가능성은 줄어들게 된 셈이다.

판결이 나온 직후, 미국의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와 크라켄이 XRP 재상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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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크립토 선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크립토 컨설팅 기업인 원더프레임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코인데스크코리아 등 국내 언론사에서 12년 가량 기자로 일했고, 대학에서는 화학과 저널리즘을 전공했습니다. 크립토와 AI, 사회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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